Thursday, May 31, 2012

김정일은 무엇을 원했을까?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 번역/정리: 김혜선기자) 지난 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유언장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이 미래의 한국과 북한 관계에 많은 의문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세종연구소와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장이 어떻게 입수됐는지는 확인 해줄 수 없지만 김정은 부위원장 최측근을 통한 크로스 체킹이 마쳐졌다고 밝혔다.

남한과 평화적 관계 추구, 군사적 우위는 필수

유언장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부터 북한은 남한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새로운 지도자가 남한의 리더가 됐을 때 북한은 남한과의 전...쟁 을 방지해야 하며 남한과 손잡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은 1948년 김 위원장 가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배할 때부터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좀 더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남북한은 철도, 도로, 바다로 된 링크를 열어야 하며 반대로 남북한이 다시 전쟁을 하게 된다면 남북한 모두 폐허가 된 후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유언장에서 남한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추구하도록 당부하면서도 북한은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하며 그를 위해 지속적으로 핵무기, 장거리미사일 및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한반도를 지킬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김 위원장은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의 심리적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6자회담을 잘 이용해야 하며 그 6자회담이란 우리의 핵을 없애기 위한 회의가 아니고 핵을 인정하고 핵 보유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회의로 만들어 합법적인 핵 보유국으로 당당히 올라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국제 제재를 줄여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인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

중국과의 관계에 관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경계해야 할 나라로 중국을 언급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우리나라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이다. 현재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가 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이용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그의 오랜 후원자이자 동맹국이기도 한 중국에 관해 경고하고 있다.

국제관계 외에도 김 위원장은 마지막 유언에서 자신의 막내아들 김정은을 최고 위원장으로 계승하는 김씨 가족의 정권계승, 군사제일주의 (선군정치)를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원으로 있는 김경희를 유언장을 집행하는 집행자로 명명했다.

김 위원장은 유언장이 읽혀지는 순간부터 1년 내에 김정은 부위원장을 최고 직책에 올려 세우며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나 입장, 현상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처리하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그는 장남인 김정남을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김정일 위원장의 첫 번째 부인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설송에 대해서도 김정은의 방조자 (보조)로 준비시키고 밀어줄 것을 당부했다.

이는 김일성 왕조를 유지하고 내부싸움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 유언장으로 김정남은 중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으며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지 않아도 됐다.

한반도 위한 장기적 목표는 평화와 안보

이외에 삼천리금고와 216호자금은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이관하고 금고 안의 모든 개인서류들도 김 부위원장에게 넘기도록 했다. 또한 국내와 국외의 모든 자금관리는 김경희가 하도록 명령했으며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은 수석정치고문으로 명명됐다. 그들은 김정은 부위원장을 위한 군사 및 경제고문이 돼 끝까지 김 부위원장을 보좌하도록 명령됐다.

현재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장에 관해 한국과 해외의 북한전문가들은 진실성을 평가하려 하고 있지만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김정일 유언장’을 통해 북한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후 북한의 행동지침이 됐던 이 유언장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한국과는 어떠한 대화나 화해의 움직임이 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김일성 주석 생일 1백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일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북한정권의 자부심과 북한주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를 희망하는 계산된 결과였다.

이 유언장이 허위이든 진실이든 간에 가장 중요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는 남북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화와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된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당장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호전적인 몸짓을 보이고 있지만 한반도를 위한 장기적인 목표는 평화와 안보이다. 이를 위해 서울과 평양의 화해의 단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다시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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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read this article in English here... What Did Kim Jong-il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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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24, 2012

해적이거나 호커스이거나

(글/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중국은 북한을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꼽고 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베이징은 북한문제에 관해 ‘세 가지 NO 정책’을 유지 해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NO, 북한정권의 변화도 NO, 중국과 한국의 국경에 미군주둔 또한 NO. 하지만 최근 몇 주 동안의 사건을 보면 이러한 전략적 동맹관계는….


중국 조업지역에서 중국어선 7척 나포…

올해 북한은 더욱 강화되고 풍요로운 국가가 될 것이라 발표했지만 중국과의 밀무역은 북한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두 번의 핵실험과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 후 유엔에 의해 저지되고 있는 사치품들의 수입금지를 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담배, 화장품, 자동차, 시계, 컴퓨터와 같은 모든 수입품들은 거의 중국을 통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 8일, 29명의 중국어부를 실은 3척의 중국어선들은 몸값을 요구하는 정체불명의 무장된 북한사람들에 의해 나포됐다. 그곳은 두 나라 사이의 해상경계에서 10해리 떨어진 중국의 조업지역이었다. 처음에는 7척의 어선이 나포됐지만 몸값을 지불한 4척의 중국어선들은 단동항으로 돌려 보내졌고 나머지 3척의 어선과 선원들은 13일동안 북한 납치범들의 손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중국어선들이 북한의 해상 경계상에서 조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용채널을 통해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국의 개인 선박소유자들이나 기업들이 그 값을 지불하는 전용채널은 결국 북한의 해상경비대에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번의 사건은 번번이 일어나고 있는 그런 해상에서의 사고들과는 다른, 아주 특이한 사건처럼 보였다. 파란색의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무장한 납치범들은 스피드보트를 타고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에 접근해왔다.

그들 중 몇몇은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납치범들은 처음에는 각 어선 당 중국 돈 40만원 (65,000 호주 달러)을 요구했고 몸값이 원하는 시간 안에 전달되지 않을 경우 모두를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선원들은 포로가 돼 먹을 것도 제공받지 못하고 구타를 당하며 어느 해안가에 나포돼 있었다. 그들은 위성전화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전달 해왔는데 나포된 선박과 선원들의 몸값을 요구하며 단동의 국경마을에 그들의 휴대폰 번호를 남겼다.

북한 정찰총국 개입설도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이 사건이 국제적인 해적단체들의 소행쯤으로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 사건에 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당국에서는 긴밀히 북한의 해상당국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결국 이 사건은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게 됐다.

최근 베이징은 북한의 로켓발사를 비난했고 북한이 계획하고 있는 다른 핵무기 실험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해왔다. 그렇다면 이번의 사건은 중국의 이런 비난에 대한 북한정부의 신중하게 계획됐던 보복을 위한 표현은 아니었을까?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로 이번 사건은 북한의 정찰총국의 개입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 정찰총국은 남포에 주둔하고 있는 West Sea Base No.2에 소속돼 있으며 그들은 동서 바다를 통한 남한의 침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되고 존재되고 있는 조직이다.

그들은 러시아제 M-400엔진이 4개 장착된 중간어선 정도 크기의 초고속 보트로 비밀리에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 해상에서의 임무를 위해 조직원들은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동해기지에서 주둔하고 있는 조직원들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도록 훈련돼 있다.

이번 사건의 목적은 단순히 돈이었을까? 외국인과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일은 필연적으로 외교문제를 불러일으키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당국의 승인 없이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포한 중국어선과 선원들의 몸값을 요구하는 것으로 문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려는 북한당국의 위장술 뒤로 북한은 중국에 불만을 표현하고 무언의 메시지를 중국으로 전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대규모 한미공군연합훈련 기간 동안 사건 발생

이 사건은 지난 4월 로켓발사와 계속적인 다른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비판에 대응하려는 북한의 새로운 리더에 의해 계획된 일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달 베이징은 북한의 탈북자들 중 몇 명이 남한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을 허용한 일이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탈북자문제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다. 현재 중국 외교부는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단동에서 그 범죄조직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

분명히 베이징은 이 사건을 부드럽게 해결해 그들의 장기적인 동맹관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대립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두 나라 사이의 강력한 정치적 동맹관계에는 분명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중국은 이러한 사소한 사건으로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남한의 경계를 구분하는 버퍼상태가 중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건의 타이밍 또한 예사롭지 않다.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유례없이 컸던 대규모 한미 공군연합훈련 ‘선더맥스’의 훈련기간 동안 이 사건이 발생했다. 한미 연합군은 공중에서의 대규모 전쟁게임 훈련을 함으로써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역시 경고를 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통한 경고 메시지는 결국 베이징과 평양 사이의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동북아지역은 더욱 깊게 편이 나뉘어지게 됐다. 냉전은 계속될 것이고 프론트 라인은 한반도 위에 그렇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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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text here... Pirates or Hawks: Who Hijacked the Chinese Fishing B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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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own.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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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y 20, 2012

동북아시아- 지역주의 없는 지역


/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Northeast Asia – a Region without Regionalism 

 지난 주, 세계는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서 좋은 관계를 수립하고자 하는 동북아시아국가들의 ‘무능력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한국, 중국, 일본에 걸쳐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해보려는 야심찬 계획들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과 편견들로 비틀거리는 모습만을 드러냈다. 식민지주의, 국제전쟁과 국가간 민사분쟁의 유산은 신뢰를 재건하고 다자협력을 달성하기 위한 시도들을 좌절시켰다.


상호 국가 인정, 동북아 냉전종결 첫 걸음

동북아시아 냉전종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예전의 이데올로기들을 극복한 상호 국가에 대한 외교적 인정이다. 20년 전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한국과 외교 및 광범위한 경제관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워싱턴과 도쿄는 북한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많은 긴장을 만들었고 한국인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모든 잠재적인 상황들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웃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 (FTA) 네트워크는 동북아시아의 지역통합을 위한 두 번째로 주요한 단계가 된다. 40년 전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일본과 중국은 양국간의 FTA를 아직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2004년 양국간 FTA를 체결을 위한 협상을 중단했고 이를 재개하려는 노력은 거의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

올해 한국은 양국간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베이징회의에 동의했으며 첫 번째 세션으로 13일 베이징회의가 개최됐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무역장관들은 올해 말까지 FTA체결을 위한 협상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3자간 경제협력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일본의 요시히코 노다 총리와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 나라 지도자들은 세 나라간의 무역과 투자를 높이고 구조적 협력을 위한 프레임 워크를 제공하기 위한 삼 변형 FTA를 체결하기 위한 견해들을 공유했다.

북한과 FTA협정 맺게 된다면…

또한 한반도에서의 북한 도발을 지속적으로 문제삼고 있지만 이러한 협상에서의 북한의 부재는 선명하게 눈에 띈다. 북한과 FTA협정을 맺게 된다면 북한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판매될 것이며 북한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소비재 부족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의 제품유입으로 해결될 것이지만 이념적인 이유로 북한은 이 협상에서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중국과 대만은 계속적인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통한 신뢰를 구축하려는 의지로 2010년 양국간 FTA협정이 체결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의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신에 김 상임위원장은 싱가포르 토니 탄 대통령과 마이클 팔머 국회의장을 만났다.

이번 방문에서 김 상임위원장은 화성시 합작 및 투자위원장, 경공업 장관들을 동행했다. 북한은 자체 소비제품과 미네랄 수출을 위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외국 투자를 유치하려 했다.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한반도 양국관계의 상황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했지만 그들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UNSC)의 제재 대상 국가라는 것에 많은 신경을 썼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로…

다음 날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그 일행은 더 많은 외국 투자유치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로 날아갔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과의 무역금지 제재조치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거래의 발목을 잡았다. 워싱턴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금융기관에 북한과의 거래에 관한 경고를 했다

마카오와 싱가포르의 은행들은 몇 년 전부터 북한과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 이러한 압력에도 인도네시아의 마티 나타레가와 외무장관은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은 건설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제안했으며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도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위성로켓 발사 문제를 논의할 때 유도요노 대통령은 대화와 소통을 위해 오해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회의를 통해 대화가 가능함을 확신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은 공무원, 관리자 그리고 두 나라의 미디어 전문가들의 방문을 통해 두 나라간의 정치적 관계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미디어 교류는 양국간의 네트워크를 위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기자들을 교류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의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북한의 그 노력에 도움이 되려 하고 있는가?

아마도 바로 이웃인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보다 더 논리적일 것이다. 북한이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 정치불신을 해결하고 경제보호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을 쌓아갈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아마도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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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Northeast Asia – a Region without Reg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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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Leonid Petrov, 2012.05.11 KoreaTown 번역 김혜선 기자)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Like Father, like Son

2012년은 북한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심장한 해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아버지이며 북한 최초의 지도자였던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오래 전부터 2012년을 번영과 발전이 있는 강성대국의 해라고 정하고 그렇게 될 것을 북한주민들에게 약속하여 왔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북한은, 분명하게 강화된 군사력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곳에서든 번영과 발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번영된 북한의 모습과는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2011 12, 약속의 해를 한달 남겨둔 김정일은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굶주리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후계자를 정해 놓음으로서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처럼 김정일은 자신의 장갑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위성에 나와 있는데로 그의 열차는 평양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죽음에 관해 우리는 아직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김정일의 죽음이 자연사였던, 아니면 어떤 목적을 위한 죽음이었던 간에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의 후계자 김정은의 안전하고 확실한 후계 계승이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일어난 일들은 마치 모두 계획되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의 후계자 김정은은 아버지의 장례위원장이 되었으며 북한의 대표자로서 외국과 국내의 조문객들을 맞이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군중들에게 물고기와 떡을 배푼것처럼 그는 주민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 김씨 왕족의 혈통을 지닌 완벽한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큰 기대를 받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권력에 머물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완전히 제외된, 그저 하나의 나라로만 존재하고 있다. 억압과 가난 그리고 고립으로 인한 공공의 슬픔과 상실의 무언극만이 존재하는 북한에서의 김씨 가족의 완전한 리더쉽의 계승은 그것의 안전성 만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북한은 어떤 종류의 변화를 방지한다. 그것은 북한이 국가로서의 존제 자체를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쵸프가 소련의 서부지방을 개방하기 시작한 후 그 변화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권력을 잃고 소련이라는 나라는 붕괴했고 사라지게 되었다. 경제적이든 또는 정치적이든 어떠한 작은 변화나 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북한은 폭발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엘리트들은 변화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씨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왕위세습을 안전하고 연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의 목적이며 관심이다. 북한이 존재하는 이유는 김씨 시대의 생존과 정권의 생존뿐이다. 북한의 존재가 구지 번영을 의미할 이유는 없다. 북한은 한국전쟁이후 60년동안 계속 가난한 상태로 지내왔으며 주민들은 매우 가혹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북한에서도 자유와 안락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상위 레벨을 가진 공산당 당간부들이다. 그들은 정권의 변화가 일어나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그들에게 제공되는 제한된 식량과 전기 그리고 친척을 방문하거나 어느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한정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북한에서는 시위나 폭동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햐면 그런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과 같은 모든 종류의 자유혁명에 대한 생각도 또 정보도 없다. 언제나 한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유지되며 그 유지를 위해 나머지 주민들은 통제되며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은 혁명조국의 상태로 시간속에 얼어붙어, 그렇게 냉동된 상태가 계속 유지 될 것이다. 북한주민들이 외국의 어떤 영향에 노출 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까지나 단지 그들의 지도자 한 사람 만을 믿고 따르며 그 어떤 변화도 그들 자신에게 일어날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정말 슬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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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Like Father, like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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