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1, 2012

북한의 숨겨진 비장의 카드…

(글/ Dr. Leonid Petrov;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정규적으로 북한을 여행해온 사람이라면 지난 몇 년 동안 의미심장하게 발전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새롭게 치솟고 있는 고층빌딩들, 도로를 달리고 있는 최신 모델의 신형차들, 개선된 인프라들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돈으로 그런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북한은 돈방석 위에 앉아 있다

북한은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야심 찬 로켓과 핵프로그램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 만만치 않은 비용들은 북한의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계속되는 국제적인 무역제재는 북한의 무역과 투자전망을 물어뜯고 있고 북한의 경제전망은 어둡기만 했다.

게다가 계속된 홍수와 가뭄, 유행성 동물질병, 또 다른 자연재해들로 약해진 북한의 경제는 소생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주변 공산국가들의 붕괴와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던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사라졌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러한 가혹한 시련들을 완전히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놀랍게 성장돼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까지도 하다.

북한은 곳곳에서 이런 미스터리 같은 희망의 모습들을 외국의 비평가들에게 보이고 있다. 2008년 차단된 남북간의 협력관계는 남한의 경제적인 지원까지 멈추게 했다. 외국의 인도주의 자선단체들의 지원조차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북한은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최소한의 무역으로 그나마 근근한 경제상태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평양은 국가 유지에 필요한 외화벌이를 위해 국제범죄와 마약밀매, 위조지폐 제작까지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범죄의 증거가 없는 돈들은 북한의 외국계좌에 쌓여가고 있으며 은행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사실 북한은 돈방석 위에 앉아 있다. 한반도의 북쪽지역을 이루고 있는 85퍼센트가 암반석 산맥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암반석에는 석탄, 철광석, 마그네사이트, 금광석, 아연광석, 구리광석, 석회석등 2백가지 이상의 다양한 미네랄들로 가득하다.

북한은 잠재적인, 거대한 광산국가

그 중 흑연이 가장 많이 매장돼 있다. 북한은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텅스텐이 매장돼 있다. 이런 자료들은 북한을 잠재적인, 거대한 광산국가라는 사실들을 입증하고 있다.

17가지 요소들로 돼있는 REMs (희귀한 지구금속)들은 지구의 지각층에서 발견됐다. 그 금속들은 풍력, 태양전지패널 하이테크 제품 제조,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녹색기술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소위 ‘첨단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REMs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LCD 제조에 꼭 필요한 미네랄이다. 세륨 및 네오디뮴과 같은 일부 드문 지구금속은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및 기타 고급기술 분야에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탱크와 비행기, 미사일과 레이저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

남한은 북한의 광맥 가치를 6조불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도의 긴장된 남북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남한은 북한과의 협력으로 REMs 개발을 하려는데 그 관심의 수치를 높이고 있다.

2011년 통일부장관의 허가로 한국광물자원공사팀은 북한의 광맥을 탐사하기 위해 2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 또한 그들은 개성공단에서 REMs의 개발문제를 가지고 북한 국민경제연합회와 회담을 하기도 했다.

지구의 희귀요소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그 가치가 점점 더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은 1톤당 1백만불로 그것들을 수출했으며 그 가격은 전년도에 비해 9백퍼센트를 상승한 가격이었다. 

북한에겐 경제개혁도, 전쟁도, 평화적 통일도 무의미

북한은 그러한 REMs를 2천만톤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예상하고 있지만 그것을 발굴하거나 그것들을 이용해 첨단산업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북한은 중국에 REMs를 1천 6백만불어치 수출했으며 그 수출량은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REMs의 가격과 수요 상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승자에게 어떤 경제적인 개혁 없이도 북한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가져왔다. 미국과 걸프, 러시아 유가 성장의 바람잡이로 북한은 천연자원 판매를 통해 풍부하고 강력한 경제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중국, 일본과의 REMs의 대규모 탐사작전으로 인한 REMs의 수출은 북한의 국고를 보충 해줄 것이고 유엔의 독재적인 제재에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며 서민들의 소비성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REMs 탐사를 위해 국제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중국팀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이나 북한의 광물자원 탐구에 협력해오고 있다. 최근 서울은 북한의 광산산업과 기술혁신에 관심을 가지고 북한에 협력하기를 희망했다. 일본과 대만 역시 마이크로 프로세서 및 기타 최첨단 산업의 대안인 REMs의 탐사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풍부하고 풍요로운 국가 (강성대국)’의 약속은 곧 이뤄질 수 있다. 발전하고 있는 핵기술과 풍부한 천연자원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북한에게 고통스러운 경제개혁은 필요치 않다. 전쟁이나 평화적인 통일의 의미도 사라지고 있다. 머지않아 한반도의 두 나라들은 수준 높은 교류와 협력의 기회를 열고 수평의 관계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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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26, 2012

김정은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다음은?

글/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북한의 권력계승은 완벽했다. 7개월 전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의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막내아들로 가는 권력계승의 길이 불안했을까 그는 막내아들 김정은을 위해 든든한 바람막이와 지침대로 서열 높은 계급에 완전한 그의 사람들을 임명했다. 어쨌든 권력계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획대로 마쳐졌으며 바퀴는 잘 굴러가고 있다.

리용호 총참모장 제거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6개월 동안 운전석에 앉아 바퀴 굴리는 방법을 익혀왔다. 이제 그는 스스로 누구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북한이라는 자동차의 핸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충분히 자신의 성숙함도 믿는다. 혼자 힘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는 그의 군사적 멘토였던 리용호(북한 총참모장)와 충돌했다. 리용호 총참모장은 모든 걸 다 빼앗겼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국자이며 영원한 주석인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시대로부터 군부대 장성의 길을 걸어왔던 69세의 노련한 군 장성은 이렇게 제거되었다. 소식통들은 그의 사격 명령으로 20명~30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게 경질의 이유였다고 전했다.

왜 어린 지휘자는 그의 정신적 스승을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제거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리용호를 제거하는 것은 그의 할아버지 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의 끈을 자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선로동당 제1비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의 순으로 서열의 계단을 오르던 김정은은 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원수가 됐다. 그는 이제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같은 영광스러운 서열의 자리에 올라 앉았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용호 총참모장을 제거하기 일주일 전 문화공연을 관람했다. 문화공연 분위기는 지금까지의 공연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미지 메이킹 위해 노력 중

새로 선보인 ‘모란봉’ 음악밴드는 멤버들 모두가 여자들이었다. 짧은 스커트, 유행하는 커트머리스타일,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멤버들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지명했다는 것이다. 월트디즈니의 미키와 미니 마우스, 서양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마오 복장을 한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를 맞이하고 있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문화공연장에 수수께끼의 여인을 동반했다. 한 때는 ‘보천보전자악단’의 솔로리스트였고 현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아내가 된 리솔주였다.

세련된 서양 스타일의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던 그녀의 자세들은 그녀 옆에 앉아있던 배불뚝이 북한 최고지도자보다 더 세상 일에 밝은 듯 한 냄새를 풍겼다.

현재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공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완벽한 지위, 군대의 최고지휘자가 된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아직은 성숙한 한 남자가 아닌 여전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막내아들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마오 복장과 짧은 머리, 그의 할아버지와 같은 외모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을 완벽한 보수주의자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은 외국에서 유학했던 신세대답게 현대적이다.

역사 배신하고 개혁에 앞장서진 못할 터

그런 그의 어깨에는 많은 질문들이 올려져 있다. 할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2천 3백만 그의 국민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평화와 전쟁, 그는 과연 무엇을 선호할까? 등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원수가 된 김정은 제1위원장 앞에는 할아버지, 아버지시대로부터 내려오던 많은 주민들과의 약속들이 이제는 시행 되기를 기다리며 놓여 있다.

남한과의 관계에서는 남한의 현 보수 정부에서 예전의 ‘햇볕정책’을 재개 해줄 온건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정책도 취할 수 없는 입장이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워싱턴 DC와 평양간의 대화는 재개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경제개혁을 하지 못하고 정치개혁을 처녀 못 하는 김정은은 역사의 희생자로 보인다.

모든 개혁이 단번에 일어날 수는 없다.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김정은 시대’의 조선중앙TV방송국에서는 월트디즈니의 미키와 미니 마우스들이 계속해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개혁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의 65년 세월 안에는 너무도 많은 거짓들과 너무도 잔혹한 일들이 역사와 함께 남겨져 있다.

막내아들 김정은은 절대로 북한의 역사를 배신하고 개혁에 앞장서지 못할 것이다. 개혁은 김씨 왕조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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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15, 2012

나의 1999년 북한 여행기: 발코니의 닭 그리고 욕조 속의 돼지…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북한 주민들이 혹독한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지어 아사하고 있다는 소문으로 북한의 경제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소문이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 직접 북한을 여행하고 느껴보는 건 어떨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공산주의 정신’과 연결돼 있는 북한의 놀라운 현실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짧은 여행에 비싼 경비를 지출하는 것쯤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

여행 스케줄 변경 불가능, 취소는 가능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입국비자를 받기 위해 국제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역매니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나는 단기 유럽 여행을 해야 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북한 최고지도자 생일에 참석하겠다는 내 고집스러운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 천 가지 이유를 대며 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북한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결국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내 북한 방문에 동의했다. ‘북한 방문 후 북한에 관해 좋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의 여행 동안 모든 계획들은 사전에 논의되고 승인 받는다. 그렇게 결정된 여행 스케줄의 변경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취소는 가능하다. 북한의 여행자들은 숙박 시설을 선택하는데 있어 선택의 폭이 무척 넓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기와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 아주 싼 가격대의 호텔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시설을 다 갖춘 고급스러운 호텔에 아주 비싼 숙박비를 지불하고 머물러야 할 것인지 때로 그 선택은 고통스럽기까지도 하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훨씬 더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호텔에 머물면서 호주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지만 1분의 통화요금은 엄청나게 비쌌다. 두 명의 통역 가이드는 언제나 나를 따라 다녔다. 내가 우울한 기분이 들어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어디든 상관없이 늘 나를 따라 다녔다.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는 최고의 교통수단이 제공된다. 베이징과 평양간 초 고속 열차 안의 침대 칸, 테이블 위에 놓여진 미네랄 워터, 식당칸의 벽에 걸려있는 최고지도자 사진들은 나를 러시아 스탈린 시대 영화의 한 장면 속의 엑스트라처럼 느껴지게도 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박물관 매우 인상적

평양에 도착을 했을 때 연료 (굶주린 나라의 실제적인 보물과도 같은) 탱크를 가득 채운 벤츠와 볼보, 그리고 닛산의 신형차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탈 수 있었다. 리무진을 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리무진이 동아시아 전체 중에서 가장 넓은 도로를 달리는 유일한 차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

오랫동안 강력한 북한의 주 에너지 공급원이 돼온 중국과 러시아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들의 기름과 전력라인을 꺼버렸을 때 북한의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모든 산업은 멈췄고 한 무리의 노동자들은 캔버라에서처럼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출근 했다. ‘환경보호관점’에서 북한의 노동자정책은 감탄으로밖에는 묘사될 수 없었다.

평양을 방문한다면, 최고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김일성 박물관을 방문하는 특별한 기회를 꼭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김일성, 그리고 그의 아들 김정일 또 그의 아들 김정은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미래의 그 아들까지 북한의 혁명전통의 왕조를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의 역사가 있는 승리의 애국전쟁기념관은 북한이 한국전쟁의 범인이며 악의 정체라는 것을 말해주듯 설계돼 있었다. 중앙역사박물관은 한국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진보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단군의 무덤은 특별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김일성은 북한의 연구학자와 고고학자들의 지침대로 한국의 신화가 됐던 최초의 왕의 골격을 출토했다. 5011년 전 한국인들의 조상인 단군의 유적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한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북한 주민들이 그들이 키우는 동물이나 애완동물을 대하는 태도였다. 생계의 어려움은 강제로 도심의 아파트에서도 가축 및 가금류를 키우도록 명령돼 있었다.

개는 고급 민속 레스토랑에서 요리되고…

농촌지역뿐만 아니고 도심에서도 염소와 닭 그리고 돼지는 가장 일반적으로 길러지는 동물이었다. 마을을 산책할 때에도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키우는 염소가 피곤하지 않도록 팔로 안고 다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고 염소는 담배를 먹고 도심의 주민들은 발코니에 많은 수의 닭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부 부유층의 사람들은 욕조에 돼지를 키우고 있었지만 평양을 방문했던 외국 관광객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에게 특별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개는 평양의 고급 민속 레스토랑에서 요리되고 있었다.

북한을 여행하는 동안 특별히 행복했던 시간이 두 번 있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건너게 됐을 때 북한에 입국할 수 있도록 입국허가서를 받았던 일과 여행을 마치고 여권을 돌려받게 돼 안전하게 북한을 떠 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흥미로운 일은 흔히 ‘자본주의국가’로 불리는 서방국가로부터의 여행객들 중 호주에서의 여행객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었다. 1975년 호주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97년에서 1998년까지 다섯 명의 북한 유학생들은 ANU에서 ‘자본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1999년 5월 북한으로부터의 공식방문자들이 캔버라를 방문했다. 국제적으로 링크된 외교관계를 개선하고 미래에 관한 몇 가지 인도적 원조를 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태국에서 북한의 인사들은 호주의 동료들에게 공식적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 언젠가 캔버라 거리에 북한으로부터 온 여행객들로 가득하게 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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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s text in English here... "CHICKENS ON THE BALCONIES, PIGS IN THE BATH T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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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28, 2012

모스크바는 김정은을 지지한다?

(글/ Dr. Leonid Petrov;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러시아는 에너지파이프와 전기 고압 전선망을 통해 분단된 한국을 연결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와 북한과의 경제관계는 오래 전 냉전시대의 그들 관계로 돌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48년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건립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북한 금고 고갈, 경제상태는 더 이상 나쁠 수가 없었다


그 이듬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2퍼센트의 대출이자로 2억 1천 2백만 소련 루블을 거둬들이러 모스크바로 여행했다. 이 돈 중 일부는 북한의 중앙개혁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할당됐지만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를 통합하기 위한 남한과의 전쟁비용으로 사용됐다.

한국전쟁 후 소련은 북한의 도시와 산업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심지어 중국과의 이념적 분할이 있는 동안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모스크바는 베이징과의 대결에서 평양을 측근에 두기 위해 노력했다.

극동 공산주의의 보루로 소련은 한반도에서 미군과 직접 대결을 했고 그러는 동안 북한은 중국과 소련, 양쪽의 주머니에서 돈을 짜내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 철의 장막은 무너졌고 모스크바의 민주화 영향은 서울을 인정했으며 평양에는 부채 상환을 요구했다.

그 시점은 북한에 있어 경제적으로 최고로 악화된 상태였다. 돈은 비생산적인 분야, 즉 군대의 사상 캠페인과 김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치스러운 기념물 등에 낭비되고 있었다.

북한의 금고는 고갈됐고 경제상태는 더 이상 나쁠 수가 없었다. 북한은 러시아에 부채상환으로 오이절임, 담배 및 인삼제품 등 가난한 수출상품의 목록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죽음과 1995년 자연재해의 시작으로 산업과 농업은 최악의 상태가 됐고 3년동안의 기아로 3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남한의 ‘햇볕정책’과 기타 이웃나라들로부터의 인도적 원조는 북한을 ‘힘겨운 3월’에 겨우 살아 남도록 허용했다.

러시아, 북한 부채 90% 할인에 합의

북한의 그러한 ‘고난의 행군’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징후를 보이기도 했다. 이때 모스크바는 미화 80억불의 부채상환을 다시 요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이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방문했다. 다른 양자간의 문제를 논의하면서 부채문제를 다른 문제들로 대처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기도 했다.

작년 8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매드베대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한 모두에 러시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도록 하는 제안에 합의했다. 동시에 북한과 러시아는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위한 프로토콜을 체결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관점을 말해주는 옵저버들은 즉각적으로 그 프로젝트에 강한 의문을 갖게 됐다. 그들의 관측으로 그 프로젝트는 남북한을 계속적인 충돌관계에 남아 있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러시아는 10년동안 이웃국가에 천연자원인 석유를 판매해 수백억불의 오일 대박을 맞게 됐다. 미화 1백 10억불의 부채를 러시아에 상환하라는 요구를 경제적으로 메마른 북한에 기대한다는 것조차도 비현실적이다.

지난 주 러시아 정부는 고집스러운 동맹국인 북한에 부채의 90퍼센트를 할인 해 주는 것에 합의했다. 나머지 미화 11억불은 러시아와 북한의 교육, 의료 및 에너지 분야의 공동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아시아에 냉전 정책 돌이키려는 러시아


그러한 과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도 거래를 하는 타이밍과 다른 한 편의 아량에 놀랄 수도 있다. 번영의 새로운 시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올해 북한은 오래된 악마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몇 십 년만의 가장 혹독한 추위와 가뭄은 농작물 수확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망가뜨려버렸다. 4월의 로켓 발사 실패는 당혹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의 식품 원조 및 국제사회로부터의 강력한 비난까지를 가져다 줬다.

또한 화폐개혁 후 고조된 인플레이션과 지속적인 에너지 위기는 김씨 왕조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러시아는 실제로 이러한 위기에 있는 김정은 부위원장을 도와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일까?

올해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그가 보수정치적으로 주변 독재 권력자들과 동맹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국제무대에서 점차로 친구들을 잃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동아시아에 과거 냉전스타일의 정책을 다시 돌이키려 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목적으로 하는 러시아의 빈 약속들은 북한의 자생을 위한 목적으로 핵무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동북아는 다시 강력한 제국에 지배를 받게 되는 커다란 지리학적 게임 극장이 돼가고 있다. 이것은 7천 5백만 한국인들을 평화와 화해가 없는 불안한 상태로 남아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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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Moscow Supports Kim Jo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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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ne 21, 2012

6.25전쟁 기념일에 돌아보는 한반도의 슬픈 역사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6월 25일은 한국전쟁 (1950-1953)이 시작됐던 슬픈 날로,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냉전과 갈등은 제3차 세계대전의 기미까지도 보이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6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 사이에 평화조약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는 주변국들의 자국 방어 위한 key place?!

심지어는 다시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까지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문제의 요점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가 들어있는 동아시아 지도를 보면 한국이 그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는 항상 주변의 대륙들과 북태평양 사이의 섬들에서 이민자들의 이동, 무역의 통로, 그리고 문화적 파도를 전파하는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국은 고대의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문화적인 통로가 돼왔으며 13세기에는 동쪽으로 그 세력을 넓혀오던 몽고의 군사력 확장을 종결 짓게 한 장소가 됐다.

16세기에는 아시아를 향한 일본의 세력확장을 도왔던 스프링 보드 역할을 하게 됐고 그 후 19세기에는 궁극적으로 가장 뜨겁고 오래 지속되는 냉전의 프론티어가 됐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정책결정자들과 전략자들은 한국을 잠재적인 적으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지역적 가치가 있는 key place로 여겼다.

그러한 이유로 주변국들과의 힘든 관계는 한국의 숙명이 됐다. 심지어는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정치적 사건들은 언제나 주변국들의 관심과 신속한 반응을 끌어왔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매우 풍부하고 극적인 정치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왕조는 그들의 제국에 한국을 포함시키려 했지만 현대적인 측면에서 보안조약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했다. 대륙의 영향력을 일본열도에 확장하려면 먼저 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그리고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임진왜란 (1592년-1598년)은 아시아의 가장 큰 전쟁이었으며 국제적인 갈등과 미래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최초의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은 중국을 정복하고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야심 찬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무사 토요토미  히데요시에의해 시작됐고 불행히도 한국은 중국을 정복하기 위한 가장 빠른 통로가 됐다.

한국이 일본군의 통로를 거저 열어주지 않음으로써 히데요시는 한국을 약탈하고 괴롭히는 대상국으로 삼았다. 명나라는 한국과 손을 잡고 히데요시의 중국을 향한 행진을 차단했다.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군대는 결국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밀어내기는 했지만 중국은 종종 한국에 그 보상을 요구해왔다.

계속되는 국내 개혁과 부진한 행정부는 제국주의의 국가들에게는 쉬운 목표물이 됐다. 청일전쟁(1894년-1895년)과 노일전쟁(1904년-1905년)을 시작하는 일본은 계속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전쟁들에서 일본은 한국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한국은 이미 중국에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던 일본에 외교적으로 통제능력을 잃었다.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은 일본제국 확장을 위해 경제적, 군사적으로 필요한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일본, 북한 인정하고 경제무역제재 해제해야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을 상대로 계속 투쟁했고 이후 35년동안 만주와 중국에서조차 일본군에 저항하는 투쟁은 계속됐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본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했다. 소련과 미국은 준비가 돼있지 않던 한국을 두 임시영역으로 나눠 맡게 되었다. 그때는 냉전으로 알려진 새로운 글로벌 갈등이 이미 진행 중에 있었으며 임시로 나뉘어졌던 한국은 끝내 통합되지 못했다.

두적대국가 – 대한민국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는 그렇게 1948년에 세워졌다. 그 후 소련과 미국이 한국을 떠난 즉시 새로운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20개국의 연합군이 전쟁에 참여했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북한, 중국, 유엔군 사령부 대표들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절한 평화조약조차 없이 적절치 못한 휴전협정조약이 체결됐다.

일본과 한국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확고한 동맹관계가 돼 미국과 강력하게 손을 잡고 있다. 1990년 초반, 공산주의의 공식적인 붕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원조와 안보보장으로 북한은 유지돼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국과 외교와 무역관계를 설립했다.

이제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인정하고 경제무역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할 시간이 됐다. 단단히 얽힌 동맹국의 낡은 시스템은 21세기를 다극화 세계로 만들고 한국을 영원한 분단상태로 가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한국이 그러한 동맹국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단단히 얽혀있던 낡은 시스템을 털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의 시대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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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15, 2012

위화도. 황금평 경제개발이 주는 의미는?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지난 주 북한은 두 개의 섬 즉, 황금평과 위화도를 외국인들을 위한 ‘무비자 구역(Visa Free Zone)’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 특별법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그들에게 관세, 세금 및 토지 사용을 하는데 특혜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과연 이 법으로 북한은 가난으로부터 구제되고 경제적으로 더 발전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작년 6월 북한•중국 공동개발 시동 걸렸지만…

한국 역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14세기 위화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위화도 회군)를 기억할 것이다. 1388년 고려의 장군 이성계는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해 명나라 땅인 랴오둥 반도를 침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군대가 압록강 하구에 있는 위화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고위 정부 관료와 군대의 지원을 받으며 이성계는 수도인 개성으로 돌아갈 것을 계획했고 쿠데타를 실행했다. 그는 왕위에 올랐고 이씨 조선을 세우며 태조가 됐다.

북한이 위화도와 황금평을 중국과의 미래 특별경제구역으로 정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려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면 아마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압록강 하구에 있는 이 섬들은 이성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두 나라 사이의 자연적인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 위치들은 북한 측에 있는 신의주 도시들과 중국 측의 단동에 있는 도시들과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2011년 6월에 북한과 중국의 공동개발 및 운영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다. 버려진 섬을 개발해 산업단지로 바꾸기 위한 결정은 경제원조와 투자를 권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위해 만들어졌다.

중국 허락 없는 국경지역 개발은 NO!

2011년 12월 그의 죽음 이후에 곧 바로 후계자가 된 김정은 부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중국과 비즈니스를 해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현금으로 남기라”고 요구했다.

상업적 도시로서의 위화도와 황금평의 중요성은 북한의 경제계획의 핵심에 있었다. 라선(Rajin-Seonbong) 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과 협력 초기의 경험은 러시아나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을 보일 경우 중국은 적극적으로 인프라와 제조업 분야에 투자할 참이었다.

중국은 신의주를 홍콩의 마카오처럼 개발하려는 신의주특별경제구역을 설정하려는 북한의 계획을 저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의 억만장자인 양빈을 2002년 신의주 특별행정구역 주지사로 임명했다.

같은 해에 북한 정부는 ‘7월 1일 경제조치’로 알려진 자체 회계관리를 기반으로 한 임금 및 가격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중국은 북동지역에 또 다른 홍콩을 세우려는 계획을 환영하지 않았으며 양빈을 탈세혐의로 잡아들였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중국과의 국경지역 개발은 모두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은 이로 인해 국제적인 제재와 국제시장에서의 신용을 제한 받게 됨으로써 중국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메마른 북한은 외국인 투자를 이용해 경제를 활성화시켜보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이미 라선 경제무역지대의 항만시설과 자동차도로 개발에 미화 3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후 중국은 위화도와 황금평의 경제개발지역에 상당히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이런 투자들이 북한을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구출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서울-평양 평화공존•경제협력만이 살 길

중국이 북한에 중국식 개혁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북한 정치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개혁’이란 단어는 북한에서의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는 북한의 경제를 개발하려 하고는 있지만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 북한이 변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발전시킬 그 어떤 비전이나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나이 많은 보수 세력과 보수적인 엘리트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는 북한에 어떠한 변화도 유발하지 않을 작은 특수경제지대를 설정해 외화를 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으로 북한의 주민들은 잘 먹고 잘 입고 PC와 휴대폰을 가질 수는 있지만 지도자의 결정에 대한 공포와 종속성 같은 편집증 상태에서의 삶을 해야 할 것이다.

위화도와 황금평을 경제적으로 개발한다 해서 북한의 사고변화의 어떠한 징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정권 유지에 드는 비용을 위해 북한은 마지 못해 이런 경제협력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서의 평화공존과 경제협력만이 북한의 이러한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남한의 최첨단 기술은 서로 완벽한 보완관계에 있다.

남한의 경제적 협력은 북한을 경제적 위기에서 구출 해줄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경제협력은 북한을 장기적인 경제적 위기로 다시 돌려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남한과의 경제협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열고 유라시아대륙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남한의 파워하우스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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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8, 2012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사이버 전쟁?!

(글/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기자

한반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도 언급된 강력한 무력도발로 서울을 날려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북한의 ‘거룩한 전쟁’이 한반도에 선포 됐다. 지난 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를 북에 넘기려 한 혐의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간첩 등)로 D무역 대표 이 모씨(74세)와 뉴질랜드 교민 김모씨(56세)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군대, 해킹전문지식 거의 완벽 구축

북한은 지난 달 2주 동안 남한 수도권지역 주요 공항을 대상으로 GPS교란시스템을 작동했다. 북한의 GPS교란장치는 GPS전파 수신을 못하도록 방해전파를 쏴 남한의 발달된 디지털사회와 네트워크를 방해하고 크루즈미사일 등 한국군의 정밀무기를 무력화 할 수 있는 장치이다. 당시 GPS 수신교란 때문에 국내외 항공기 6백 70여 대, 선박 1백 10여척의 운항이 지장을 받았다.

4월 13일 북한의 위성 발사는 불발로 끝났지만 북한은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남한을 위협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이버전쟁’을 이용하고 있다. 이 GPS교란신호는 DMZ (비무장지대)로부터 10킬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한의 국경도시 개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적됐으며 4월 28일에 시작해 5월 6일에 끝났다.

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이번 사이버전쟁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대가 해킹전문지식을 거의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2개월 동안 북한은 한국의 금융기관, 심지어는 미국정부와 미군의 웹사이트까지 수 차례 공격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인민군에는 수백 명의 해커들이 있으며 대부분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들 중 일부는 남한의 소셜네트워크에 침투해 북한의 선전을 확산하기 위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 정찰총국은 한국의 IT산업과 네트워크 인프라를 다운 시키기 위해 그들을 조정하고 있다.

북한 정찰총국 게임프로그램 남한에 유통

요즘 북한은 사이버전쟁 중 하나로 컴퓨터게임 프로그램에 악성바이러스코드를 심어놓는 일을 하고 있다. 39세의 조씨로 알려진 한국 컴퓨터도매업자는 악성코드가 포함된 북한 정찰총국의 게임프로그램을 국내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중국에 가면 북한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심양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국내 가격의 1/3도 안 되는 가격으로 프로그램을 구입했고 악성코드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들여와 온오프라인 게임 운영자 수십 명에게 팔아 수억 원을 챙겼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PC 수십만 대는 북한의 디도스공격에 이용 될 수 있는 좀비 컴퓨터로 변했고 개인정보 50여만 건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실제적으로 이를 토대로 지난 해 4월 인천공항 서버해킹을 시도한 적이 있다.

지난 주 서울에서 체포된 56세의 뉴질랜드시민권자인 김씨는 지난 해 7월 중국 단동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한국의 첨단 방위산업 기술을 수집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김씨는 방위산업체 H사 관계자로부터 GPS 교란장치 기술을 이메일로 입수한 혐의가 있다. 이번에 체포된 김씨와 함께 체포된 그의 파트너 이씨는 1972년 간첩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뒤 90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며 94년부터 대북교역을 해온 1세대 대북사업자이다.

남한 언론사에 ‘조준타격’ 가능성 시사

그러나 그들 외에 또 다른 조직이 NSI4.0 (장거리 위치추적 안테나) 기술도 입수하려 했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안테나는 2단 이상의 로켓에 장착되는 핵심장비이며 북한이 이 기술을 입수할 경우 지난 달 공개한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9년 이 기술을 북한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또한 남한의 검찰은 스텔스전투기 도료, 전파탐지 교란기, 해상작전 헬기시뮬레이터 등 군 기밀자료와 방위산업 기술들도 북한에 유출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북한은 입수된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지난 주에 명확히 보여줬다. 이례적으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북한은 또한 조선소년단 66돌 경축행사와 관련 남측 언론들이 이를 폄하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KBS, MBC, SBS, CBS 등의 좌표를 공개한 뒤 ‘조준타격’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남한의 안보는 급성장한 정보통신기술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1953년 한반도 상의 두 한국에 체결됐던 ‘평화협정’은 점점 더 도발적이며 팽팽한 긴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서 공존의 평화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 사이의 좀 더 확고한 평화조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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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31, 2012

김정일은 무엇을 원했을까?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 번역/정리: 김혜선기자) 지난 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유언장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이 미래의 한국과 북한 관계에 많은 의문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세종연구소와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장이 어떻게 입수됐는지는 확인 해줄 수 없지만 김정은 부위원장 최측근을 통한 크로스 체킹이 마쳐졌다고 밝혔다.

남한과 평화적 관계 추구, 군사적 우위는 필수

유언장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부터 북한은 남한과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새로운 지도자가 남한의 리더가 됐을 때 북한은 남한과의 전...쟁 을 방지해야 하며 남한과 손잡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은 1948년 김 위원장 가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배할 때부터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좀 더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남북한은 철도, 도로, 바다로 된 링크를 열어야 하며 반대로 남북한이 다시 전쟁을 하게 된다면 남북한 모두 폐허가 된 후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유언장에서 남한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추구하도록 당부하면서도 북한은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하며 그를 위해 지속적으로 핵무기, 장거리미사일 및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한반도를 지킬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김 위원장은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의 심리적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6자회담을 잘 이용해야 하며 그 6자회담이란 우리의 핵을 없애기 위한 회의가 아니고 핵을 인정하고 핵 보유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회의로 만들어 합법적인 핵 보유국으로 당당히 올라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국제 제재를 줄여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인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

중국과의 관계에 관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경계해야 할 나라로 중국을 언급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우리나라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이다. 현재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가 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이용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그의 오랜 후원자이자 동맹국이기도 한 중국에 관해 경고하고 있다.

국제관계 외에도 김 위원장은 마지막 유언에서 자신의 막내아들 김정은을 최고 위원장으로 계승하는 김씨 가족의 정권계승, 군사제일주의 (선군정치)를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원으로 있는 김경희를 유언장을 집행하는 집행자로 명명했다.

김 위원장은 유언장이 읽혀지는 순간부터 1년 내에 김정은 부위원장을 최고 직책에 올려 세우며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나 입장, 현상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처리하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그는 장남인 김정남을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김정일 위원장의 첫 번째 부인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설송에 대해서도 김정은의 방조자 (보조)로 준비시키고 밀어줄 것을 당부했다.

이는 김일성 왕조를 유지하고 내부싸움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고안됐다. 이 유언장으로 김정남은 중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으며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지 않아도 됐다.

한반도 위한 장기적 목표는 평화와 안보

이외에 삼천리금고와 216호자금은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이관하고 금고 안의 모든 개인서류들도 김 부위원장에게 넘기도록 했다. 또한 국내와 국외의 모든 자금관리는 김경희가 하도록 명령했으며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은 수석정치고문으로 명명됐다. 그들은 김정은 부위원장을 위한 군사 및 경제고문이 돼 끝까지 김 부위원장을 보좌하도록 명령됐다.

현재 김정일 위원장의 유언장에 관해 한국과 해외의 북한전문가들은 진실성을 평가하려 하고 있지만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김정일 유언장’을 통해 북한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후 북한의 행동지침이 됐던 이 유언장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한국과는 어떠한 대화나 화해의 움직임이 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김일성 주석 생일 1백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일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북한정권의 자부심과 북한주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를 희망하는 계산된 결과였다.

이 유언장이 허위이든 진실이든 간에 가장 중요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는 남북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화와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된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당장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호전적인 몸짓을 보이고 있지만 한반도를 위한 장기적인 목표는 평화와 안보이다. 이를 위해 서울과 평양의 화해의 단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다시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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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read this article in English here... What Did Kim Jong-il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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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24, 2012

해적이거나 호커스이거나

(글/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중국은 북한을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꼽고 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베이징은 북한문제에 관해 ‘세 가지 NO 정책’을 유지 해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NO, 북한정권의 변화도 NO, 중국과 한국의 국경에 미군주둔 또한 NO. 하지만 최근 몇 주 동안의 사건을 보면 이러한 전략적 동맹관계는….


중국 조업지역에서 중국어선 7척 나포…

올해 북한은 더욱 강화되고 풍요로운 국가가 될 것이라 발표했지만 중국과의 밀무역은 북한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두 번의 핵실험과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 후 유엔에 의해 저지되고 있는 사치품들의 수입금지를 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담배, 화장품, 자동차, 시계, 컴퓨터와 같은 모든 수입품들은 거의 중국을 통해 들어가고 있다.

지난 8일, 29명의 중국어부를 실은 3척의 중국어선들은 몸값을 요구하는 정체불명의 무장된 북한사람들에 의해 나포됐다. 그곳은 두 나라 사이의 해상경계에서 10해리 떨어진 중국의 조업지역이었다. 처음에는 7척의 어선이 나포됐지만 몸값을 지불한 4척의 중국어선들은 단동항으로 돌려 보내졌고 나머지 3척의 어선과 선원들은 13일동안 북한 납치범들의 손에 붙들려 있어야 했다.

중국어선들이 북한의 해상 경계상에서 조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용채널을 통해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국의 개인 선박소유자들이나 기업들이 그 값을 지불하는 전용채널은 결국 북한의 해상경비대에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번의 사건은 번번이 일어나고 있는 그런 해상에서의 사고들과는 다른, 아주 특이한 사건처럼 보였다. 파란색의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무장한 납치범들은 스피드보트를 타고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에 접근해왔다.

그들 중 몇몇은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납치범들은 처음에는 각 어선 당 중국 돈 40만원 (65,000 호주 달러)을 요구했고 몸값이 원하는 시간 안에 전달되지 않을 경우 모두를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선원들은 포로가 돼 먹을 것도 제공받지 못하고 구타를 당하며 어느 해안가에 나포돼 있었다. 그들은 위성전화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전달 해왔는데 나포된 선박과 선원들의 몸값을 요구하며 단동의 국경마을에 그들의 휴대폰 번호를 남겼다.

북한 정찰총국 개입설도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이 사건이 국제적인 해적단체들의 소행쯤으로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 사건에 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당국에서는 긴밀히 북한의 해상당국과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결국 이 사건은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게 됐다.

최근 베이징은 북한의 로켓발사를 비난했고 북한이 계획하고 있는 다른 핵무기 실험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해왔다. 그렇다면 이번의 사건은 중국의 이런 비난에 대한 북한정부의 신중하게 계획됐던 보복을 위한 표현은 아니었을까?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로 이번 사건은 북한의 정찰총국의 개입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 정찰총국은 남포에 주둔하고 있는 West Sea Base No.2에 소속돼 있으며 그들은 동서 바다를 통한 남한의 침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되고 존재되고 있는 조직이다.

그들은 러시아제 M-400엔진이 4개 장착된 중간어선 정도 크기의 초고속 보트로 비밀리에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 해상에서의 임무를 위해 조직원들은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동해기지에서 주둔하고 있는 조직원들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도록 훈련돼 있다.

이번 사건의 목적은 단순히 돈이었을까? 외국인과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일은 필연적으로 외교문제를 불러일으키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당국의 승인 없이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포한 중국어선과 선원들의 몸값을 요구하는 것으로 문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려는 북한당국의 위장술 뒤로 북한은 중국에 불만을 표현하고 무언의 메시지를 중국으로 전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대규모 한미공군연합훈련 기간 동안 사건 발생

이 사건은 지난 4월 로켓발사와 계속적인 다른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비판에 대응하려는 북한의 새로운 리더에 의해 계획된 일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달 베이징은 북한의 탈북자들 중 몇 명이 남한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을 허용한 일이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탈북자문제에 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다. 현재 중국 외교부는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단동에서 그 범죄조직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

분명히 베이징은 이 사건을 부드럽게 해결해 그들의 장기적인 동맹관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대립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두 나라 사이의 강력한 정치적 동맹관계에는 분명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중국은 이러한 사소한 사건으로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남한의 경계를 구분하는 버퍼상태가 중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건의 타이밍 또한 예사롭지 않다.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유례없이 컸던 대규모 한미 공군연합훈련 ‘선더맥스’의 훈련기간 동안 이 사건이 발생했다. 한미 연합군은 공중에서의 대규모 전쟁게임 훈련을 함으로써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역시 경고를 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통한 경고 메시지는 결국 베이징과 평양 사이의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동북아지역은 더욱 깊게 편이 나뉘어지게 됐다. 냉전은 계속될 것이고 프론트 라인은 한반도 위에 그렇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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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text here... Pirates or Hawks: Who Hijacked the Chinese Fishing B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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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y 20, 2012

동북아시아- 지역주의 없는 지역


/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Northeast Asia – a Region without Regionalism 

 지난 주, 세계는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서 좋은 관계를 수립하고자 하는 동북아시아국가들의 ‘무능력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한국, 중국, 일본에 걸쳐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해보려는 야심찬 계획들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과 편견들로 비틀거리는 모습만을 드러냈다. 식민지주의, 국제전쟁과 국가간 민사분쟁의 유산은 신뢰를 재건하고 다자협력을 달성하기 위한 시도들을 좌절시켰다.


상호 국가 인정, 동북아 냉전종결 첫 걸음

동북아시아 냉전종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예전의 이데올로기들을 극복한 상호 국가에 대한 외교적 인정이다. 20년 전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한국과 외교 및 광범위한 경제관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워싱턴과 도쿄는 북한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많은 긴장을 만들었고 한국인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모든 잠재적인 상황들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웃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 (FTA) 네트워크는 동북아시아의 지역통합을 위한 두 번째로 주요한 단계가 된다. 40년 전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일본과 중국은 양국간의 FTA를 아직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2004년 양국간 FTA를 체결을 위한 협상을 중단했고 이를 재개하려는 노력은 거의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

올해 한국은 양국간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베이징회의에 동의했으며 첫 번째 세션으로 13일 베이징회의가 개최됐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무역장관들은 올해 말까지 FTA체결을 위한 협상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3자간 경제협력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일본의 요시히코 노다 총리와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 나라 지도자들은 세 나라간의 무역과 투자를 높이고 구조적 협력을 위한 프레임 워크를 제공하기 위한 삼 변형 FTA를 체결하기 위한 견해들을 공유했다.

북한과 FTA협정 맺게 된다면…

또한 한반도에서의 북한 도발을 지속적으로 문제삼고 있지만 이러한 협상에서의 북한의 부재는 선명하게 눈에 띈다. 북한과 FTA협정을 맺게 된다면 북한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판매될 것이며 북한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소비재 부족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의 제품유입으로 해결될 것이지만 이념적인 이유로 북한은 이 협상에서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중국과 대만은 계속적인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통한 신뢰를 구축하려는 의지로 2010년 양국간 FTA협정이 체결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의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신에 김 상임위원장은 싱가포르 토니 탄 대통령과 마이클 팔머 국회의장을 만났다.

이번 방문에서 김 상임위원장은 화성시 합작 및 투자위원장, 경공업 장관들을 동행했다. 북한은 자체 소비제품과 미네랄 수출을 위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외국 투자를 유치하려 했다.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한반도 양국관계의 상황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했지만 그들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UNSC)의 제재 대상 국가라는 것에 많은 신경을 썼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로…

다음 날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그 일행은 더 많은 외국 투자유치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로 날아갔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과의 무역금지 제재조치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거래의 발목을 잡았다. 워싱턴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금융기관에 북한과의 거래에 관한 경고를 했다

마카오와 싱가포르의 은행들은 몇 년 전부터 북한과 거래를 중단하고 있다. 이러한 압력에도 인도네시아의 마티 나타레가와 외무장관은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은 건설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제안했으며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도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위성로켓 발사 문제를 논의할 때 유도요노 대통령은 대화와 소통을 위해 오해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회의를 통해 대화가 가능함을 확신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은 공무원, 관리자 그리고 두 나라의 미디어 전문가들의 방문을 통해 두 나라간의 정치적 관계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미디어 교류는 양국간의 네트워크를 위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기자들을 교류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의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북한의 그 노력에 도움이 되려 하고 있는가?

아마도 바로 이웃인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보다 더 논리적일 것이다. 북한이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 정치불신을 해결하고 경제보호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을 쌓아갈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아마도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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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Leonid Petrov, 2012.05.11 KoreaTown 번역 김혜선 기자)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here... Like Father, like Son

2012년은 북한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심장한 해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아버지이며 북한 최초의 지도자였던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오래 전부터 2012년을 번영과 발전이 있는 강성대국의 해라고 정하고 그렇게 될 것을 북한주민들에게 약속하여 왔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북한은, 분명하게 강화된 군사력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곳에서든 번영과 발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번영된 북한의 모습과는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2011 12, 약속의 해를 한달 남겨둔 김정일은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굶주리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후계자를 정해 놓음으로서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처럼 김정일은 자신의 장갑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위성에 나와 있는데로 그의 열차는 평양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죽음에 관해 우리는 아직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김정일의 죽음이 자연사였던, 아니면 어떤 목적을 위한 죽음이었던 간에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의 후계자 김정은의 안전하고 확실한 후계 계승이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일어난 일들은 마치 모두 계획되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의 후계자 김정은은 아버지의 장례위원장이 되었으며 북한의 대표자로서 외국과 국내의 조문객들을 맞이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군중들에게 물고기와 떡을 배푼것처럼 그는 주민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 김씨 왕족의 혈통을 지닌 완벽한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큰 기대를 받고 있는 그는 꽤 오랫동안 권력에 머물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완전히 제외된, 그저 하나의 나라로만 존재하고 있다. 억압과 가난 그리고 고립으로 인한 공공의 슬픔과 상실의 무언극만이 존재하는 북한에서의 김씨 가족의 완전한 리더쉽의 계승은 그것의 안전성 만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북한은 어떤 종류의 변화를 방지한다. 그것은 북한이 국가로서의 존제 자체를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쵸프가 소련의 서부지방을 개방하기 시작한 후 그 변화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권력을 잃고 소련이라는 나라는 붕괴했고 사라지게 되었다. 경제적이든 또는 정치적이든 어떠한 작은 변화나 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북한은 폭발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엘리트들은 변화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씨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왕위세습을 안전하고 연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의 목적이며 관심이다. 북한이 존재하는 이유는 김씨 시대의 생존과 정권의 생존뿐이다. 북한의 존재가 구지 번영을 의미할 이유는 없다. 북한은 한국전쟁이후 60년동안 계속 가난한 상태로 지내왔으며 주민들은 매우 가혹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북한에서도 자유와 안락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상위 레벨을 가진 공산당 당간부들이다. 그들은 정권의 변화가 일어나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그들에게 제공되는 제한된 식량과 전기 그리고 친척을 방문하거나 어느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한정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북한에서는 시위나 폭동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햐면 그런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과 같은 모든 종류의 자유혁명에 대한 생각도 또 정보도 없다. 언제나 한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유지되며 그 유지를 위해 나머지 주민들은 통제되며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은 혁명조국의 상태로 시간속에 얼어붙어, 그렇게 냉동된 상태가 계속 유지 될 것이다. 북한주민들이 외국의 어떤 영향에 노출 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까지나 단지 그들의 지도자 한 사람 만을 믿고 따르며 그 어떤 변화도 그들 자신에게 일어날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정말 슬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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